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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가 아프면 맹장염부터 의심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병동에서 일하다가 생각이 완전히 바뀌는 경험을 했습니다. 인공관절 수술 후 고열과 극심한 복통을 호소하던 환자분이 알고 보니 급성 담낭염이었거든요. 담낭염은 빠르게 진행하면 담낭 천공(터짐)이라는 치명적인 합병증으로 이어질 수 있어, 증상을 정확히 아는 것이 생각보다 훨씬 중요합니다.
담낭 증상, 단순 복통과 어떻게 다를까
많은 분들이 오른쪽 배가 아프면 맹장염(충수염)을 먼저 떠올립니다. 그런데 맹장염은 오른쪽 '아랫배'가 문제이고, 급성 담낭염은 오른쪽 '윗배', 즉 갈비뼈 아래쪽이나 명치 부위에 통증이 집중됩니다. 제가 병동에서 처음 그 환자분을 봤을 때도 "수술 후니까 일시적인 복통이겠지"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는데, 통증이 몇 시간째 전혀 가라앉질 않았습니다.
급성 담낭염의 통증에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단순한 담관 산통(bile colic)이라면 — 여기서 담관 산통이란 담석이 담관을 자극할 때 생기는 경련성 통증으로, 보통 수 시간 이내에 사라지는 것이 특징입니다 — 비교적 짧게 끝납니다. 그런데 통증이 수 시간 넘게 지속된다면 단순 담관 산통이 아니라 급성 담낭염으로 봐야 한다는 게 의료계의 일관된 시각입니다.
특히 저를 놀라게 했던 건 방사통(referred pain)이었습니다. 방사통이란 통증의 발원지가 아닌 전혀 다른 부위에서 통증이 느껴지는 현상인데, 급성 담낭염에서는 오른쪽 어깨나 등 뒤쪽으로 통증이 뻗쳐 나가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배가 아픈데 어깨가 같이 아프다고 하면 놓치기 쉽죠. 여기에 고열과 오한, 오심(구역질)과 구토까지 동반된다면 강하게 의심해봐야 합니다.
흥미로운 점은, 급성 담낭염으로 진단된 환자의 약 70%가 발병 2년 전부터 유사한 증상을 간헐적으로 경험했다는 것입니다(출처: 서울아산병원 건강정보). 몸이 이미 수년 전부터 신호를 보내고 있었던 셈입니다. "참고 견디면 낫겠지"라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그 생각이 제일 위험하다고 봅니다.
급성 담낭염이 의심될 때 나타나는 주요 신호
아래는 급성 담낭염에서 비교적 자주 관찰되는 증상들입니다. 이 중 2~3개가 겹친다면 빠르게 병원을 찾는 것이 맞습니다.
- 오른쪽 윗배(우상복부) 또는 명치 쪽에 수 시간 이상 지속되는 둔하고 강한 통증
- 오른쪽 어깨나 등 뒤쪽으로 퍼지는 방사통
- 38도 이상의 고열과 오한
- 오심(구역감), 구토
- 담낭 부위(우상복부)를 손으로 눌렀을 때 극심하게 악화되는 압통 — 특히 숨을 들이쉬다가 통증이 갑자기 심해져 멈추는 현상(머피 징후, Murphy's sign)
진단과 치료, 그냥 버티면 안 되는 이유
급성 담낭염의 원인 중 72~93%는 담석입니다. 담석이 담낭관을 막으면 담낭 안의 압력이 높아지고, 담낭벽이 붓고 염증이 퍼집니다. 담석 없이도 발생하는 경우가 5~10%가량 되는데, 이쪽이 오히려 더 빠르게 진행되고 괴사나 천공 위험이 높아 진단도 치료도 까다롭습니다.
진단에는 복부 초음파 검사가 우선 사용됩니다. 담낭 내 담석 유무, 담낭벽 두께, 담낭 주변의 체액 저류 여부를 확인할 수 있고, 탐촉자로 담낭 부위를 직접 눌러 압통을 확인하는 '초음파 머피 징후'도 진단에 중요한 근거가 됩니다. 초음파만으로 판단이 어려운 경우에는 복부 전산화 단층촬영(CT)을 시행합니다. CT란 X선을 여러 각도에서 촬영해 단면 영상으로 재구성하는 검사로, 담낭 외에 췌장이나 담관 등 주변 장기의 이상 유무까지 한 번에 확인할 수 있습니다.
치료 초기에는 금식과 정맥 수액 공급, 항생제 투여, 진통제·진경제로 증상을 조절합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처럼 75% 정도는 수술 없이도 증상이 호전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럼 나아지면 그냥 끝이지 않나요?"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데, 저는 그게 아니라고 봅니다. 내과적 치료로 증상이 호전된 환자의 약 20%가 1년 안에 재발을 경험합니다(출처: 서울아산병원 건강정보). 재발을 막으려면 담석이 있는 담낭 자체를 절제하는 담낭 절제술이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제가 실제로 무서웠던 건 합병증 쪽이었습니다. 아무 처치 없이 방치하면 빠르면 증상 발현 2일 후부터 담낭 농양(고름 고임), 담낭 괴사(조직 사망), 담낭 천공이 차례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특히 담낭 천공이란 염증으로 담낭벽에 구멍이 뚫리는 것으로, 오염된 담즙과 고름이 복강 전체로 퍼지면서 담즙성 복막염 또는 패혈증으로 이어지는 생명을 위협하는 응급 상황입니다. 민간요법이나 진통제로 버티며 시간을 끄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이 대목에서 분명해집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담석이 있으면 무조건 수술해야 하나요?
A. 담석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수술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증상이 없고 담석 크기가 크지 않으며 동반 질환도 없다면 특별한 치료 없이 경과를 관찰하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입니다. 다만 급성 담낭염으로 진행된 경우, 또는 담낭에 다른 이상 소견이 동반된 경우에는 담낭 절제술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결국 수술 여부는 증상과 상태를 종합해 의사와 함께 판단하는 것이 맞습니다.
Q. 담낭염 통증이 맹장염이랑 어떻게 다른가요?
A. 위치가 가장 큰 차이입니다. 맹장염(충수염)은 오른쪽 아랫배에 통증이 집중되는 반면, 급성 담낭염은 오른쪽 윗배나 명치 쪽에서 통증이 시작됩니다. 여기에 오른쪽 어깨나 등 뒤로 뻗치는 방사통이 동반된다면 담낭염 쪽을 더 의심해봐야 합니다. 두 경우 모두 고열이 동반될 수 있어 헷갈리기 쉬우므로, 통증 위치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Q. 급성 담낭염인데 약만 먹고 버텨도 되나요?
A. "약으로 버티면 낫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데, 이건 꽤 위험한 선택일 수 있습니다. 처치 없이 방치하면 빠르면 2일 만에 담낭 농양이나 담낭 괴사, 최악의 경우 담낭 천공으로 이어져 패혈증까지 진행할 수 있습니다. 진통제로 통증만 억제하면 정작 중요한 염증 진행을 놓치게 됩니다. 급성 담낭염 진단이 나왔다면 입원 치료와 항생제 투여를 우선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Q. 담낭을 잘라내면 소화에 문제가 생기지 않나요?
A. 담낭 절제 후 소화 기능에 영향이 생길 수 있다고 걱정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실제로 담낭은 담즙을 저장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수술 초기에 지방이 많은 음식을 먹으면 불편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만 간에서 담즙 생성 자체는 계속 이루어지므로, 대부분 시간이 지나면 적응하게 됩니다. 식이 조절에 대해서는 수술 후 담당 의사와 상의하는 것이 가장 정확합니다.
결론
그 환자분이 전원 가신 이후로, 저는 복통을 호소하는 환자를 볼 때 통증의 위치와 지속 시간을 훨씬 더 꼼꼼하게 살피게 됐습니다. 급성 담낭염은 초기에는 "좀 불편한 복통"처럼 느껴질 수 있지만, 방치하면 담낭 천공과 패혈증으로 이어지는 무서운 질환입니다.
오른쪽 윗배 통증이 몇 시간째 사라지지 않고, 고열이나 오한, 어깨 쪽 방사통까지 동반된다면 지체하지 마시고 병원을 찾으시길 권합니다. 증상이 좋아졌다고 해서 끝이 아니라, 재발 방지를 위해 담낭 절제술 필요 여부를 반드시 의사와 상의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