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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선기능저하증 환자의 90% 이상이 여성입니다. 병원에서 일하면서 직접 겪어보니, 이 숫자가 단순한 통계가 아니라는 걸 실감했습니다. 극심한 피로, 이유 없는 체중 증가, 사라지지 않는 붓기. 환자분들이 털어놓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이 병이 얼마나 조용히 그리고 깊게 사람을 갉아먹는지 느꼈습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 이렇게 다양합니다
병원 일을 하면서 신기하다고 느낀 게 하나 있었습니다. 갑상선 질환으로 내원하시는 분들이 거의 예외 없이 여성이었다는 점입니다. 남성 환자는 제 기억에 손에 꼽을 정도였고, 씬지로이드(갑상선호르몬 보충제)를 처방받아 복용 중인 분들도 모두 여성이었습니다.
그분들에게 직접 증상을 여쭤보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이 있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게 너무 힘들어요." 단순한 피곤함이 아니라, 몸 전체가 납덩이처럼 무겁다는 표현을 자주 쓰셨습니다. 추위를 남들보다 유독 심하게 탄다거나, 밥을 적게 먹는데도 살이 찌고 몸이 붓는다는 하소연도 빠지지 않았고요.
이게 왜 생기냐면, 갑상선호르몬이 우리 몸에서 열과 에너지를 만드는 핵심 역할을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호르몬이 부족해지면 온몸의 대사(metabolism), 쉽게 말해 몸 안에서 에너지를 만들고 소비하는 과정 전체가 느려집니다. 그러니 먹지 않아도 살이 찌고, 충분히 잔 것 같아도 피로가 가시지 않는 겁니다.
증상은 생각보다 훨씬 광범위합니다. 서울아산병원 건강정보에 따르면, 갑상선기능저하증이 진행되면 다음과 같은 증상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출처: 서울아산병원 건강정보).
- 극심한 피로감, 의욕 저하, 집중력 감퇴 및 기억력 감소
- 추위를 심하게 타고 땀이 잘 나지 않으며 피부가 건조하고 창백해짐
- 얼굴과 손발이 붓는 점액수종성 부종 (손가락으로 눌러도 자국이 생기지 않는 것이 특징)
- 식욕이 없어도 체중이 증가하고, 변비와 소화 불량이 동반됨
- 목소리가 쉬고 말이 느려지며, 근육통과 팔다리 저림이 생김
- 여성의 경우 월경량 증가가 흔하게 나타남
그리고 제가 직접 환자분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장 마음이 쓰였던 부분이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주변에서 왜 이렇게 게으르냐, 왜 자꾸 살이 찌냐"는 핀잔을 들었다고 하셨습니다.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니 아무도 병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죠. 하지만 이건 의지나 성격의 문제가 절대 아닙니다. 몸속에서 에너지를 만드는 엔진이 꺼진 상태, 철저히 신체적인 질환입니다. 가까운 분이 이 병을 앓고 있다면, 핀잔보다는 따뜻한 위로 한마디가 훨씬 더 필요합니다.
또 한 가지 주의할 점은, 갑상선기능저하증의 증상이 매우 서서히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수년에 걸쳐 조금씩 진행되기 때문에 몸이 그 상태에 적응해 버리고, 스스로 이상하다는 걸 뒤늦게 알아채는 경우가 많습니다. 혈액 검사에서 갑상선자극호르몬(TSH) 수치가 높게 나와서야 처음 알게 되는 분도 적지 않습니다. 여기서 TSH(갑상선자극호르몬)란 뇌하수체에서 분비되어 갑상선에 "호르몬을 더 만들어라"라고 신호를 보내는 물질로, 갑상선 기능이 떨어지면 이 TSH 수치가 반대로 올라가게 됩니다.
왜 생기고, 어떻게 치료하나요
갑상선기능저하증의 가장 흔한 원인은 하시모토 갑상선염(Hashimoto's thyroiditis)이라는 자가면역 질환입니다. 자가면역 질환이란, 외부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막아야 할 우리 몸의 면역 체계가 오작동을 일으켜 오히려 자기 자신의 조직을 공격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갑상선의 경우, 면역계가 갑상선 세포를 적으로 인식해 지속적으로 손상시키면서 호르몬 생산 능력이 점점 떨어지게 됩니다.
이 외에도 갑상선 수술 후 조직이 제거되거나, 방사성 요오드 치료를 받은 뒤 기능이 저하되는 경우, 선천적으로 갑상선 발달에 결함이 있는 경우, 또는 바이러스 감염으로 인한 갑상선염 등이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뇌 쪽 문제로 발생하는 경우도 있는데, 시상하부나 뇌하수체에 종양이나 감염이 생기면 TSH 분비 자체가 줄어들어 갑상선호르몬이 충분히 만들어지지 않기도 합니다.
제가 느낀 건, 이 자가면역 반응이 단순히 운이 나빠서 생기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만성 스트레스, 수면 부족, 영양 불균형 같은 생활 요인이 자가면역 반응을 훨씬 더 악화시킨다는 게 현재 의학계의 중론입니다. 약을 열심히 먹는 것 못지않게, 잠을 충분히 자고 무리하지 않는 일상 습관이 치료 결과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뜻입니다.
치료 방법 자체는 단순합니다. 부족한 갑상선호르몬을 약의 형태로 보충하는 것, 그게 전부입니다. 국내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레보티록신(levothyroxine) 제제, 흔히 씬지로이드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약이 대표적입니다. 레보티록신이란 우리 몸이 자연적으로 생산하는 갑상선호르몬 T4와 동일한 구조의 합성 호르몬으로, 복용하면 체내에서 활성형 호르몬으로 전환되어 정상적인 대사 기능을 유지시켜 줍니다(출처: 서울아산병원 건강정보).
많은 분들이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는 말에 거부감을 느끼십니다.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하지만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의 시각이었습니다. 밥을 먹어야 에너지가 생기듯, 몸이 스스로 만들지 못하는 호르몬을 식사처럼 매일 보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훨씬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일단 적정 용량이 정해지면 연 1회 혈액 검사로 TSH와 갑상선호르몬 농도를 확인하는 것으로 충분하고, 장기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도 없습니다.
치료를 소홀히 하면 고지혈증, 동맥경화증 같은 심혈관계 합병증이나 점액수종성 혼수(myxedema coma), 즉 극도로 대사가 저하되어 의식을 잃는 위험한 상태로까지 이어질 수 있습니다. 증상이 의심된다면 반드시 혈액 검사를 통해 정확히 확인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갑상선기능저하증인데 살이 안 빠지는 게 정말 병 때문인가요?
A. 네, 실제로 그렇습니다. 갑상선호르몬이 부족하면 기초대사율 자체가 낮아져서 적게 먹어도 체중이 증가하거나 빠지지 않습니다. 제가 병원에서 환자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식사량을 줄여도 효과가 없어 스트레스를 받으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적정 용량의 레보티록신을 꾸준히 복용하면서 호르몬 수치가 정상 범위로 돌아오면 체중 조절도 훨씬 수월해집니다.
Q. 씬지로이드를 평생 먹어야 한다는데, 부작용은 없나요?
A. 부족한 갑상선호르몬을 그대로 보충하는 것이라 장기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은 없습니다. 다만 복용량이 과하면 심계항진이나 골밀도 감소 같은 문제가 생길 수 있어서, 연 1회 혈액 검사로 TSH 수치를 확인하며 용량을 조절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처방된 용량을 임의로 늘리거나 줄이는 건 피하는 것이 좋습니다.
Q. 하시모토 갑상선염이 있으면 무조건 갑상선기능저하증이 되나요?
A. 하시모토 갑상선염은 갑상선기능저하증의 가장 흔한 원인이지만, 초기에는 갑상선 기능이 정상으로 유지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가 항체 수치가 높더라도 TSH와 갑상선호르몬 수치가 정상 범위에 있다면 당장 약을 시작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다만 정기적인 추적 검사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Q. 갑상선기능저하증이 우울증과 연관이 있나요?
A. 연관이 있습니다. 갑상선호르몬이 부족하면 뇌의 대사도 함께 저하되어 우울감, 의욕 저하, 인지 기능 감소가 동반될 수 있습니다. 제 경험상 환자분들 중 우울증 치료를 먼저 받다가 나중에 갑상선기능저하증으로 진단받은 분들도 계셨습니다. 우울감이 오래 지속된다면 갑상선 기능 검사를 한번쯤 받아보는 것을 권합니다.
결론
갑상선기능저하증은 눈에 잘 띄지 않아서 오히려 더 오해받기 쉬운 병입니다. 제 경험상 이건 정말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니 주변에서 알아채기 어렵고, 당사자도 "원래 내가 좀 피곤한 체질인가보다"하고 넘기다가 뒤늦게 진단을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왜 이럴까" 하고 자책할 필요는 없습니다. 몸이 지금 너무 지쳐서 에너지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의심되는 증상이 있다면 혈액 검사 한 번으로 확인할 수 있고, 치료도 어렵지 않습니다. 가장 중요한 건 그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 것입니다. 약을 꾸준히 챙기면서, 동시에 몸을 좀 더 다정하게 돌봐주는 것, 그게 시작입니다.
참고: https://www.amc.seoul.kr/asan/healthinfo/disease/diseaseDetail.do?contentId=30863